문헌록 전자족보(대동보) > 문헌록
           
1. 문헌 목록 〉10. 10世 〉29. <부정공>양벽정중건기(漾碧亭重建記)
1. 문헌 목록 〉10. 10世 〉31. <부정공>양벽정지사실기(漾碧亭址事實記)
1. 문헌 목록 > 10. 10世 >  
30.<부정공>양벽정중건사실기(漾碧亭重建事實記)
漾碧亭重建事實記 昇州之北富有縣梅雨村右醉巖沼上有漾碧亭寔吾三灘先祖所築也當仁明之際見士禍孔慘炳幾南下與河西金先生玉峰白先生結道義交筮遯講學於斯而刻三賢船遊錄於巖面其後松江鄭先生重峰趙先生淵齋宋先生及三芝鄭公砥齋金公諸賢先後登臨題名記蹟山川草木重生精彩豈可以比於徒事酣觴宴遊之樓亭哉基後世遠亭毀英宗丙辰賴官助而重創矣累經兵亂遺址空存而愚氓等無難侵害基址樹木故高宗乙丑年間族曾大父聾隱公與諸宗累訴官府快受決題一門設契立券將爲重建計矣其後歲甲子春伯父滄庵族兄灘雲竹圃三公及先府君創會同諸宗議決重建而將以爲爼豆之奉炳燿永世矣不幸灘雲公中途而卒于丙寅秋惟滄庵竹圃兩公與先府君會同僉宗極誠綢繆而擇吉丁卯春經始營之廣賴遠近士林之助力重建斯完矣壁土未乾而伯父亦卒于是年秋先府君奄忽于翌年秋嗚呼痛矣一門三秋連疊三喪門運之衰薄何若是甚歟於是乎竹圃公不勝慨嘆與舍伯龜隱公欲遂前日未遑之擧而拘於滄桑之屢革未遂素志而卒于丁丑秋噫此豈備事之隆替顯晦有時而然者耶非但宗族之飲恨而己士林之痛惜者多矣一日余與竹圃公胤子東厚登亭逍遙感想前事彷徨久之東厚正衿而請曰瞻彼醉巖巍然眞像風而磨洗心常恐懼今則閣既成矣靈既安矣然後之視今亦猶今之示昔當此世亂前賢尊慕之誠創修之功恐或爲湮沒則吾等承襲遺意而妥靈之所爼豆之擧豈非繼志述事耶願記事實而揭之余以蔑識豈敢開喙感嘆東厚慕先之誠深且遠而忘拙記實如右 十三世孫 致洙 謹記 양벽정중건사실기(漾碧亭重建事實記) 승주의 북쪽 부유고을 매우마을의 오른편 취암소(醉岩沼) 위에 있는 양벽정은 곧 우리 삼탄(三灘) 선조가 세운 정자이다. 인종(仁宗), 명종(明宗) 때에 사화(士禍)가 참혹함을 보고는 남쪽으로 내려와서 하서(河西) 김 선생과 옥봉(玉峰) 백 선생과 더불어 도의(道義)로써 사귀어 노닐고 숨어서 학문을 강론하며 삼현선유록(三賢船遊錄)을 바위에 새겼었다. 그 뒤에 송강(松江) 정 선생 중봉(重峰) 조 선생 연재(淵齋) 송 선생 및 삼지(三芝) 정공, 지재(砥齋) 김공과 같은 훌륭한 분들이 차례로 와서 정자에 올라 이름을 새기고 자취를 남겨 산천초목이 거듭 정채를 더하였으니, 어찌 한갓 술잔이나 기울이고 노는 누정(樓亭)에 비할 수 있겠는가. 그 뒤에 연대가 오래되었으므로 정자가 헐어 영조(英祖) 병진년(一七三六)에 국력(國力)으로 중창하였으나, 병란으로 빈 터만 남아 무지한 초동목수들의 놀이터가 되어 화목(花木)의 침해가 적지 않았다. 고종(高宗) 을축년(一八六五)에 족 증대부(曾大夫) 농은공(聾隱公)이 제종과 더불어 여러 차례 관가에 청원하여 쾌히 기지를 확보하고는 온 문중이 재물을 모아 장차 중건을 계획하더니, 그 뒤 갑자년 봄에 백부 창암(滄庵), 족형 탄운(灘雲), 죽포(竹圃) 三공 및 선부군이 제종과 더불어 중건하여 장차 사우(祠宇)로 받들고 향사하고 영원히 빛낼 계획을 다시 세웠다. 불행히 탄운공이 정자를 기공하기 전인 병인년 가을에 별세하고 오직 창암 죽포 두 공이 선부군과 함께 여러 종족을 모아 정성을 다하여 경획하여 길일을 가려 정묘년 봄 에 착공하고 널리 원근에 있는 사림의 협조를 얻어 준공하였다. 벽도 마르기 전에 창암공이 별세하고 선부군이 또 다음해 가을에 문득 세상을 떠나니, 아! 슬프다. 일문이 삼추에 세 번 상사를 당하니 문중 우수의 쇠박함이 어찌 이와 같이 이루지 못한 것을 완성하고자 하였으나 자주 세상의 변이 생겨 처음에 계획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포공이 갑자기 세상을 뜨니 때는 정축년 가을이었다. 아! 이는 일의 흥패가 때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닌가. 다만 종족만이 한스럽게 여긴 것이 아니라 통탄해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루는 내가 죽포공의 아들 동후(東厚)와 함께 정자에 올라 거닐며 전사를 생각하고 오랫동안 머뭇거리니 동후가 옷깃을 바로하고 청하되, 『저 취암(醉岩)을 바라보면 존엄한 진상(眞像)이 바람과 비에 깎이고 닦여 마음이 항상 송구하더니, 이제는 각기 이루어졌으므로 정영이 편안하실 것이나 뒤에 사람이 지금을 보는 것이 지금 사람이 옛적을 생각한 것과 같을 것이니 이 혼란한 때를 당하여 전현(前賢)을 높이 추모한 정성과 창수(創修)의 공이 혹 스러질까 두려워 우리가 끼친 뜻을 이어받아 정령을 편안히 모실 곳과 향사할 계획을 추진한 것이 어찌 계술한 일이 아니겠는가. 원하건대 사실을 기록하여 계재하라.』 하였다. 나의 졸문으로써 어찌 감히 개구하리오마는 동후의 조상을 사모하는 정성에 감탄하여 외람됨을 잊어버리고 위와 같이 사실을 기록한다. 十三世孫 致洙 삼가 기록함
 
1. 문헌 목록 〉10. 10世 〉29. <부정공>양벽정중건기(漾碧亭重建記)
1. 문헌 목록 〉10. 10世 〉31. <부정공>양벽정지사실기(漾碧亭址事實記)